'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5.04.04 제국호텔
  2. 2005.04.04 로비하우스 2
  3. 2005.04.04 구겐하임 미술관
  4. 2005.04.04 낙수장 1
  5. 2005.04.04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제국호텔 (帝國ホテル, ていこくホテル)




국보숙박시설(國寶宿泊施設)로 구상(構想)되어 초대(初代)는 1890年에 준공(竣工). 1917年기공(起工), 23年준공(竣工)2년째의 건설(建設)은 미국인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アメリカ人フランク=ロイド=ライト)가 설계함.


http://www.pbs.org/flw/buildings/imperial/imperial.html



Frank Lloyd Wright 
미국 1869~1959.


라이트는 유럽 중심의 근대건축의 흐름에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유럽건축에 영향을 끼친 미국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을 통하여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적인 건축의 기수이며, 기하학적인 수평선과 자연의 조화, 내부공간의 리듬, 반복과 대립의 적절한 구성 등 현대건축의 중심언어를 훌륭히 사용하였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으로는 수잔 로렌스 다나주택, 찬레이주택, 라이트 스튜디오, 윈슬로주택, 로비주택, 윌리츠주택, 마틴주택, 이사벨로버츠주택, 쿤레이주택, 야하라보트클럽, 유니티교회, 라킨빌딩, 미디위이가든, 동경제국호텔, 홀리호크주택, 엔니스주택, 프라이스타워, 낙수장, 존스왁스 빌딩, 탈리아센 웨스트, 하비아곳주택, 랄프제스트주택, 모리스상회, 구겐하임미술관, 마린 시빅센터외 800여개의 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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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e House - frank lloyd wright

Chicago,Illinois,1909

= Robie House =




A. 일렬 주택의 평면: 


십자형 주제에 관한 변형이며, 그의 가장 중요한 주거용 평면 유형 중의 하나이다. 

일렬 주택의 평면은 기준선에 의해 확립된다. 

이러한 수평축은 기본적인 세로 면적의 배치를 결정하며,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부수적인 횡단축을 이룬다. 


그것은 디자인을 촉발시키며 그 개발에 대한 조직상의 보강재가 된다. 

로비주택은 아마 라이트의 가장 유명한 주거 디자인 일 것이다. 

그것은 충분한 사건을 일으키는 드라마와 매력적인 통합을 지니며, 특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다른 저항할 수 없는 단일성에 비례를 부여한다. 


이 주택의 꾸준한 수평적 구성은 디테일의 모든 단계에서 반복된다. 돌출 지붕, 상처난 로마식 벽돌, 외팔보 테라스, 연속적인 석조 갓돌벽, 그리고 연속된 띠모양의 창은 운동 심지어는 공중으로 부유하는듯한 동적 감각을 부여하고 있다.




B. 벽체의 배치형태와 상호관입


창과 문으로 등으로 뚫려진 전통적인 벽체는 연속적인 창문이 이루는 연속적인 띠에 의해 지붕과 분리된 분절되지 않은 판넬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외부 공간이 막힘 없이 상호전이가 되도록 처리되었다. 


또한 벽체의 배치에 있어서 2개의 큰 볼륨을 형성하는 벽체를 서로 엇갈려 배치함으로써 2개의 외부 공간이 형성되었는데, 하나는 가로를 면한 자동차를 위한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후면에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처리되었다. 

로비주택에서 벽체의 중첩으로 벽면이 가지는 일반적인 속성인 공간을 폐쇄하고 한정하는 역할보다는 내 외부의 시각적, 공간적 연속성을 조절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C. 볼륨


2개의 좁고 긴 볼륨이 마치 서로 어긋난 조각처럼 위치해 있는데, 주 공간들을 포함하고 있는 큰 부분은 가로쪽에, 서비스공간과 차고를 포함하고 있는 작은 부분은 후면에 위치해 있다.

이 두 볼륨이 어긋나게 미끄러지면서 뒤쪽으로 나가는 입구 복도가 생기며, 입구는 감추어져 보이지 않게 된다. 


큰 볼륨은 거의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독립적인 벽난로를 갖고 있다. 2개 층에 걸친 서비스 공간이 이 중심 볼륨에 비대칭적으로 부가되어 있다.




D. 창문
외부에서 볼 때 정원벽, 테라스, 발코니, 지붕처마 등이 만들어 내는 강한 수평선들은 벽체의 연속적이고 짧은 수직선들과 강한 대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E. 기둥
몇단 후퇴된 모서리 부분의 짧은 기둥을 모서리에 배치하여 돌출 시킴으로써 눈에 띄는 수평선과 강한 대조를 이룸과 동시에 내 외부에서 강한 디자인의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외부에서 볼 때 극적으로 뻗어 나가는 돌출된 수평선들을 정착시키고 함께 결속시켜 주는 벽난로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 interior & exterior



ground floor




prow




the strip windows of the living room





living room





living room toward the fireplace





dining room toward the stairwell





p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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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ggenheim (1943-1959) **


2차 대전 후 건축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에 라이트는 그의 작품 경력 중 절정에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성하였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건물들 중에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지구랏트, 계단 피라미드, 나선형 첨탑 등의 형태를 연상시켜주는 거대한 중앙집중식 볼륨을 가지고 있으며 상반된 2개의 가치를 구체화하여 전달한다. 

또한 완벽한 보안과 연속적인 움직임을 표현하였다. 


이 건물은·미국의 민주주의적 신화를 기념한 기념비적인 것이기도 하며, 공간적 연속성의 마무리를 통해 물질이 아닌 공간이 총체적 현실로 인식된다. 

하나의 중심적인 개념에 의해 건물의 내용과 형식이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사로를 통로인 동시에 전시공간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기능면에서 비판되기도 했다. 

대형 내부공간의 확산을 위한 천창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겐하임 미술관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세기 건축의 랜드 마크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 의해 설계된 솔로몬 구겐하임은 아래보다 상부가 넓은, 나선형의 원통형 흰색 콘크리트 건물과 간소한 육면체의 건물, 16층의 정방형 격자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라이트는 맨하튼의 직선적인 건축 형태나 미술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모두 깨트리길 원했고, 결국 '정신의 전당(temple of spirit)'으로서 곡선적이고 연속적인 공간을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향후 미술관이 수행할 건축사적 역할을 선언한 셈이 되었다. 


부분적인 벽면을 제외하고는 유리창이 전혀 없는 원통형 건물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연결된 궁륭의 유리 천장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연광이 바닥까지 비치며 아래에서 보나 위에서 보나 360도로 활짝 열린 실내의 공간감이 몹시 시원하다. 

이 달팽이 모양의 공간은 작품 전시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별관 건물과 소호의 분관을 열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고, 오히려 건물 자체가 관광객 유치에 큰 몫을 하고 있다.



1939년 설립된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은 지난 60여 년간 주로 비구상계열의 작품들을 전시하며 현대미술의 흐름을 일반 시민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설립자 솔로몬 R. 구겐하임은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광산재벌였다.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추상 회화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1937년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하였고, 뉴욕 이스트 54가에 비구상회화 미술관(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으로 처음 미술관 문을 연 이래 1952년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개명하였으며 1959년에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뉴욕에 '정신적 성전'을 표현하는 둥근 로툰다 미술관을 건립했다. 


달팽이 모양의 외관과 나선형 계단으로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작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 관람객이 경사로를 걸어 내려오면서 벽에 걸린 전시작들을 둘러 볼 수 있게 만든 파격적인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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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수장 **


1935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피츠버그 백화점 사장을 위해 세운 낙수장은 라이트가 만든 것 들 중 가장 시적인 건축으로서 라이트의 로맨틱한 신념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다. 

낙수장에서 사용된 주요 요소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슬래브로, 천장 역할과 바닥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 다음은 돌인데, 내외부의 석벽과 바닥은 시멘트와 대조적인 조화를 이루고, 마지막으로 유리막이 부여 되었는데, 이것은 연속 된 유리막 가운데 있는 고정 유리창과 결합되어 있다. 

이 유리 커튼 월이 낙수장의 세 번째 주요 요소이다. 낙수장이 지형의 경사에 따라 한 층씩 뒤로 물러나 앉아 있듯이 유리막 또한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져 있고, 거실 주변의 유리막은 내부 공간의 구석마다 있는 기둥이 없이 3면이 연속해서 펼쳐져 있다.


라이트는 조용하고 한적한 생활 방식을 조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주의 환경을 온전히 보존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테라스-정원-땅을 단순하게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융통성 있고 잘 통합된 어떤 것이 요구 되었다. 

그리하여 낙수장의 각 실들은 거의 다 외부와 연속되어 있으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연과 접하고 있다. 


그의 습관처럼 내외부 공간 사이에 어떤 차이나 변화를 주지 않았고, 바닥도 문턱 없이 이어지며, 낮은 천장들은 더 낮아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바깥으로 이어져 평 처마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자연광의 변화와 식물과 공기의 계절적 변화가 어우러져 낙수장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즉, 라이트는 내외부가 하나 되게 하는 공간의 연속성과 내외부 공간에 사용되는 재료의 일관된 연속성(바닥, 벽, 천장)을 강조하였다.




람 사는 기본 공간 형식은 자연과 함께 하는 단독주택이다. 

원시의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다 각자의 집을 가졌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시 주거가 서서히 공동주택으로 바뀌고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수직 동선이 건축에 도입되면서 고밀도 집합주거가 등장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화가 가속되고 도시 주택의 대부분은 공동주택이 되어가고 있다. 라이트의 대표작인 ‘낙수장’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인간 공간의 원형을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의 공간 형식으로 보여주는 20세기 최고의 집이다.

낙수장은 라이트가 69세 되던 해에 완성되었다. 푸른 하늘과 숲과 물 사이에 불세출의 천재가 만든 그 모든 것을 합한 ‘인간의 공간’이 폭포 위에 세워져 있다. 


폭포 위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폭포에 이르는 개천 위의 다리를 지나야 한다. 

다리를 지나 아래쪽 복도를 지나야 현관이 나온다. 현관에서 좌측으로 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펼쳐진 테라스가 있는 거실이 나타난다. 


거실 한구석에 땅에서 솟은 듯한 벽난로와 부엌이 있고 부엌은 철제 창틀을 통해 후원으로 열린다. 

2층에는 세 침실이 있는데 모두 각자의 테라스를 갖고 있고 3층에는 욕실과 테라스가 딸린 큰 방이 하나 있다. 

벽난로와 부엌에 의한 수직 부분이 자유로이 부유하는 테라스를 암반에 고정시켜 자연의 연속 속에 건축형태를 폭포로 상징되는 자연의 힘과 조화되도록 만들었다.




양 건축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현대 건축의 이름으로 라이트는 서양건축사가 이루지 못한 자연과 혼연일체 된 동양적 건축 미학을 서양 현대 건축에 보여주었다. 


자연의 흐름을 건축에 담는 초기의 주택 작품들인 대평원의 집(Prairie House)에서 꽃을 피운 그의 천재가 한동안 일본 문명과 아메리카 문명에 몰두하다가 69세의 나이에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큰 것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낙수장이라 불리는 카우프만 하우스(Kaufmann House)다. 


낙수장에서 자연은 건축과 대립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럽게 건축 공간이 되고 건축 공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상호교감을 연출하고 있다. 

그가 유기적 건축의 최종적 요소로 말하던 건축과 인간의 진정한 상관을 뜻한다. 


그의 건축 속에서 인간은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된다. 

그는 주택 작품만이 아니라 공공건물에서도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수장(Falling water, 1935∼1939년 건설)은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라이트(F. L. Wright, 1867∼1959)가 설계한 대표작으로 개인 별장형태의 주택이다.

피츠버그에 있는 이 낙수장 건물이 최근 들어 캔틸레버 형태(길이:4.57m)의 지붕이 아래로 처지고 있어 라이트의 명성에 오점이 되고 있다. 


뉴욕의 구조전문가 로버트 실먼(Robert Silman)에 의하면, 낙수장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는 건설당시 건설업자가 지적한 철근 량의 부족을 설계자인 라이트가 받아들였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택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콘크리트 캔틸레버는 1997년도에 최초로 구조적인 부실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철제빔을 동원하여 캔틸레버를 받쳐 놓았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거실바닥 한복판에 욕조 배수구만한 크기의 구멍이 났다'고 보도했고, 이 건물의 관리자에 의하면 균열이 계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만약 이 건물이 붕괴된다면, 마치 돌을 포개어 놓은 선반 같을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자연과의 친화'로 유명한 이 주택의 마지막이 아이러니라고 소개하였다.

구조기술자인 실먼은 영구적인 대책으로 '포스트텐셔닝 공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콘크리트 구조체에 구멍을 낸 뒤 고장력 강선을 삽입하여 긴장시켜 쳐진 부분을 원상회복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낙수장 뿐만 아니라 라이트의 주요작품 중 하자가 발생한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중 하나로 플로리다 남부대학(Florida Southern College)의 포크카운티 사이언스 빌딩을 들 수 있다. 


현재, 이 건물은 1996년에 콘크리트 블록에 손상이 발견된 뒤 1,000만불을 들여 영국의 John McAsan사에 의해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15ft(4.57m)길이의 캔틸레버가 쳐진 것에 대한 영구적인 보강법을 검토하기 위해 3명의 건축가, 3명의 엔지니어, 1명의 건축재료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적인 위원회가 열려 최종적으로 '포스트텐셔닝공법' 으로 결정되었다.

1930년대 라이트의 대표작을 원상 복구하는데 7백만 불을 투입하여 2년 내에 착수하기로 했다. 


라이트의 아들인 에릭까지 참가한 지난 4월 10일 피크버그에서 열린 회의에서, 위원들은 1997년에 캔틸레버 하부에 설치된 강제 지주를 제거하고, 영구적인 보수가 될 수 있는 프스트텐션 케이블을 설치하는데 합의를 하였다. 


라이트 설계의 주요점은 캔틸레버로서 지주를 받쳐 놓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실패작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영구적인 보강법의 설계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로버트 실먼사가 맡는다고 한다. 


강케이블은 건물의 주부재인 보의 양측을 따라 설치되고, 처짐이 없는 상태, 즉 당초 거푸집을 제거했을 때의 상태까지 케이블을 설치 할 것이다. 이 보수보강공사의 비용은 공공재원이 아닌 민간차원에서 조성된 복구기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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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




약력

- 1867 출생

- 1885 위스콘신 대학 입학

- 1887 대학 중퇴 평생 스승인 루이스 헨리 셜리반 사무소에 들어감.

- 1893 시카고에 자신의 사무실 개설.

- 만국박람회를 통하여 일본과 동양의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함.

- 1893~1910 제 1 황금시대. 자연과 대지에 융합한 전원주택을 설계한 시기.


- 윈슬로우 주택, 로비 주택, 라킨 빌딩, 유니티 교회 등

   1911~1935 침묵의 시기. 

   해외 도피 및 은둔 생활로 작품 활동거의 없었음.


- 미드웨이 가든, 일본의 제국 호텔, 탈리아신 이스트 등

   1936~1959 제 2 황금시대. 20여년의 공백 기간을 깨뜨리는 명작을 남김


- 낙수장, 존슨 왁스 회사, 구겐하임 박물관 등

- 1959 사망.(당시 91세)





'신의 주택이 그것의 장소로부터 쉽게 확장될 수 있고, 그곳 자연이 근사하다면, 그곳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 하도록 하게 하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건축물이 마치 그러한 기회를 가졌던 것처럼 그 장소에서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있도록 하라.'

'위대한 건축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다'



든 시대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건축가들로부터 최고의 건축가로 인정받는 사람은 단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다. 

작품과 그에 대한 논문과 저작만도 거의 2천개가 넘는다.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누구도 겨룰 수 없을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던 그의 라이프스타일과 여성 편력은 아메리카의 유명한 스캔들이었다.

그는 건축가로 태어나서 건축가로 키워졌다. 

어린 시절 그는 바흐와 베토벤을 즐겨 연주하던 아버지와, 그를 임신하였을 때부터 그를 건축가로 키우려 하였던 어머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천부의 재능에 더하여 인생을 통한 끊임없는 건축에의 헌신으로 과거의 역사 건축과 다른 특유의 20세기 문명의 건축을 만들었다. 

불후의 걸작인 낙수장(Falling water)과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은 인류가 이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건축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건물은 다른 예술처럼 영속적이지 못하다. 

건축은 필요에 의해 시작된 만큼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이트가 지은 484개의 건물 중 75개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가장 많은 건물이 살아남아 있는 건축가이며 아마도 앞으로 그의 건물들은 오히려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미 그의 건축은 역사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트는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된 유럽의 이민 국가 미국에서 독자의 문명을 구축하고 유럽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미국 작가다. 

라이트의 건축은 유럽 건축에 깊고 넓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문명과 일본을 통한 오리엔트 문명을 미국 문명과 접속시켜 이전의 어느 건축가도 이루지 못했던 자연과 교감하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창출하였다.

그는 20세기 문명이 만든 콘크리트, 철골, 철근 콘크리트, 금속판, 판유리, 그리고 플라스틱 등으로 인류가 이루지 못했던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내었다. 


이들 재료를 통해 건축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며 특이한 공간을 창출한 것이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자연 친화적 건축이 나오기 전 그는 이미 1894년 처음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유기적 건축’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는 자연의 생명체와 같은, 주변과 교감하는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건축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을 하나가 되게 하는 유기적 건축을 만들고자 하였다. 

시간이란 말은 건축이 만들어지는 시대정신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의 건축은 과거 건축의 반복이 아닌 끊임없이 진전하는 문명의 언어이기를 시도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초고층 건축에서도 그는 새로운 건축공법의 창안을 항상 시도하였고 20세기 건축 기술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였다. 

그는 이미 백 년 전부터 친환경적 건축의 방법과 이론에 대해서 많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자연과 혼연일치된 건축 공간의 실현을 시도하였다.


그가 말하는 유기적 건축의 세 요소인 시간, 공간, 인간은 시대정신과 환경, 인간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유기적 건축에서의 시간은 건축이 탄생하는 당대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시대정신, 시대의지라 하였다. 

모든 시대는 고유의 공간형식을 가져야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에 있어서 공간은 시각적 자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최대 걸작인 낙수장은 자연과 하나가 된 유기적 건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는 역사와 지리와 인간을 건축 공간 속에 통합한 위대한 건축가였다. 그는 기술자로서의 건축가, 예술가로서의 건축가이기 이전에 사상가로서의 건축가였으며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위대한 휴머니스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이미 40대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였으나 그의 친구이며 건축주였던 친구 부인과의 스캔들로 인해 상류사회에서 버려지고, 대평원의 집으로 세계에 알려졌던 천 황금시대 이후 작가로서 한계에 부딪친 채 근 20년 가까이 잊혀진 건축가가 되었을 때 그는 그의 스승 루이스 설리번처럼 술에 탐닉하는 대신 잃어버린 창조력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자기반성과 연마에 몰입했다.


건축가로서 황금기일 수 있었던 50대를 철저히 잊혀진 채 지내던 라이트는 60세 이후에 세기적 걸작인 낙수장을 발표하여 화려하게 다시 일어선 후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걸작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캘리포니아의 마린 주정부청사(Marin Country Civic Center)는 드디어 캘리포니아가 자신의 자연에 걸 맞는 크기의 건축 공간을 갖게 된 유기적 건축의 정수이며, 그가 낙수장 이후 16년의 긴 기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최후의 작품으로 남긴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상형문자로 역사에 남았다.



축의 거장들, 즉 발터 그로피우스, 르 꼬르뷔제, 미스 반 데 로에 등보다 10여년 먼저 태어난 그는 91세 10개월 이라는 장수를 누리며, 죽음 직전까지 설계 작업을 계속해왔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광대한 작품을 남겼다. 


다작이었던 그의 업적 모두가 걸작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수많은 걸작을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자연의 생명과 조형 속에서 그 창조 원리를 찾아내어 그의 건축 이념을 확립하였고, 생명력 넘치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를 일컬어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 라이트의 건축적 사고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사고를 간단히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는 근원에의 탐구, 기하학적 형태의 추구, 공간-건축의 실체, 유기적 건축에 관한 것들을 선택하였다.



근원에의 탐구


'원리를 실행한 것은 사라지나,원리는 불멸이다.'

라이트는 건축을 함에 있어 본질과 근원을 찾고자 했고, 그것을 건축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는 건축을 생명의 가장 진실한 기록, 위대한 정신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건축이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정신이고, 또 시대와 장소의 정신이었다.


‘어느 직품이든 나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 내 작품의 배후에 본질이 작용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건축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방법에 완전성을 갖게 될 것이다.’



기하학적 형태의 추구


라이트는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와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기하학적 형태로 그의 작품을 표현했다. 

기하학적 형태는 어린 시절 프레벨 교육시스템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에게 기하학적 체계와 그 디자인 특성에 대한 인식, 3차원적 솔리드와 보이드에 대한 감각, 다양한 요소의 구성 능력에 대한 이해, 복잡한 2차원적 패턴과 3차원적 공간을 ‘엮어내는 것’에 대한 매력, 2차원적인 제도판 위에 그린 패턴들의 3차원적 관계들을 시각화 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것들이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형상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여 형태와 공간 구성으로 발전하였다. 

사각형의 결합과 조합, 삼각형 패턴의 연속된 반복 계획, 육각형이 주조를 이루면서 연속된 벌집형의 플랜 그리고 원형, 원추형 등 평면적인 구상에서 입체적이며, 조형적인 감각으로 발전되었다.



공간-건축의 실체


‘건축의 건실성과 본질은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 있다.’

근대 건축은 건물에 공간의 개념을 주었는데 특히 라이트는 둘러싼 공간을 건축의 실체로 보고 건축 이상으로써 공간 건축을 추구하였다. 


이 공간은 생명이 들어오며, 외부와 내부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관입하여 공간에 흐름과 연속성을 준다. 

그에게 있어 단순한 상자는 마치 관과 같아서 사람을 감금시키고 에워싼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자유롭지 못한 건축이었다. 

모서리를 열므로서 빛과 사람의 움직임이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



유기적 건축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의 화두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유기적 건축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으로부터 왔다. 


또한 그의 스승 셜리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 셜리반은 신건축을 "유기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라이트는 셜리반의 사상을 기능주의적으로 오해한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것으로 이해하였고, 이를 발전시켜 라이트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완성시켜갔다. 


자연에서 추출된 그의 건축적 모티브는 가장 원초적인 개념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에 대한 직관은 자연의 자태에서 형상화된 구조의 시스템을 비롯하여 형태, 내부와 외부 공간의 관입, 수직과 수평의 상호 연관 관계 및 연속과 확장, 반복 및 대립의 관계로 이어져 각각의 개체가 결합되면서 일체로 표현되는 유기적 건축의 맥을 이루고 있다.


라이트는 시대적 흐름의 격동과 역경 속에서도 많은 작품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건축적 사고의 근본인 유기적 건축론을 실제화 하면서 이론과 실체를 겸비하여 충실하게 표현한 건축가 이다. 


자연을 디자인의 모든 원리, 결과의 내부적인 요소로서 이해하였으며 기하학적인 평면의 전개와 입체 조형, 그것에 의한 내부와 외부공간의 융합, 자연과의 일체화 및 재료의 본질이 갖는 자연의 구조를 추상화해서 개발하는 것이 건축의 창조적 행위라고 여겼다. 


그러한 원리를 건축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평생을 일관되게 추구한 거장이었다. 그의 본질을 향한 탐구와 정신은 혼란되고 표피적인 오늘날에 다시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축은 사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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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