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




약력

- 1867 출생

- 1885 위스콘신 대학 입학

- 1887 대학 중퇴 평생 스승인 루이스 헨리 셜리반 사무소에 들어감.

- 1893 시카고에 자신의 사무실 개설.

- 만국박람회를 통하여 일본과 동양의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함.

- 1893~1910 제 1 황금시대. 자연과 대지에 융합한 전원주택을 설계한 시기.


- 윈슬로우 주택, 로비 주택, 라킨 빌딩, 유니티 교회 등

   1911~1935 침묵의 시기. 

   해외 도피 및 은둔 생활로 작품 활동거의 없었음.


- 미드웨이 가든, 일본의 제국 호텔, 탈리아신 이스트 등

   1936~1959 제 2 황금시대. 20여년의 공백 기간을 깨뜨리는 명작을 남김


- 낙수장, 존슨 왁스 회사, 구겐하임 박물관 등

- 1959 사망.(당시 91세)





'신의 주택이 그것의 장소로부터 쉽게 확장될 수 있고, 그곳 자연이 근사하다면, 그곳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 하도록 하게 하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건축물이 마치 그러한 기회를 가졌던 것처럼 그 장소에서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있도록 하라.'

'위대한 건축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다'



든 시대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건축가들로부터 최고의 건축가로 인정받는 사람은 단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다. 

작품과 그에 대한 논문과 저작만도 거의 2천개가 넘는다.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누구도 겨룰 수 없을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던 그의 라이프스타일과 여성 편력은 아메리카의 유명한 스캔들이었다.

그는 건축가로 태어나서 건축가로 키워졌다. 

어린 시절 그는 바흐와 베토벤을 즐겨 연주하던 아버지와, 그를 임신하였을 때부터 그를 건축가로 키우려 하였던 어머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천부의 재능에 더하여 인생을 통한 끊임없는 건축에의 헌신으로 과거의 역사 건축과 다른 특유의 20세기 문명의 건축을 만들었다. 

불후의 걸작인 낙수장(Falling water)과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은 인류가 이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건축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건물은 다른 예술처럼 영속적이지 못하다. 

건축은 필요에 의해 시작된 만큼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이트가 지은 484개의 건물 중 75개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가장 많은 건물이 살아남아 있는 건축가이며 아마도 앞으로 그의 건물들은 오히려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미 그의 건축은 역사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트는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된 유럽의 이민 국가 미국에서 독자의 문명을 구축하고 유럽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미국 작가다. 

라이트의 건축은 유럽 건축에 깊고 넓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문명과 일본을 통한 오리엔트 문명을 미국 문명과 접속시켜 이전의 어느 건축가도 이루지 못했던 자연과 교감하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창출하였다.

그는 20세기 문명이 만든 콘크리트, 철골, 철근 콘크리트, 금속판, 판유리, 그리고 플라스틱 등으로 인류가 이루지 못했던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내었다. 


이들 재료를 통해 건축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며 특이한 공간을 창출한 것이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자연 친화적 건축이 나오기 전 그는 이미 1894년 처음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유기적 건축’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는 자연의 생명체와 같은, 주변과 교감하는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건축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을 하나가 되게 하는 유기적 건축을 만들고자 하였다. 

시간이란 말은 건축이 만들어지는 시대정신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의 건축은 과거 건축의 반복이 아닌 끊임없이 진전하는 문명의 언어이기를 시도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초고층 건축에서도 그는 새로운 건축공법의 창안을 항상 시도하였고 20세기 건축 기술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였다. 

그는 이미 백 년 전부터 친환경적 건축의 방법과 이론에 대해서 많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자연과 혼연일치된 건축 공간의 실현을 시도하였다.


그가 말하는 유기적 건축의 세 요소인 시간, 공간, 인간은 시대정신과 환경, 인간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유기적 건축에서의 시간은 건축이 탄생하는 당대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시대정신, 시대의지라 하였다. 

모든 시대는 고유의 공간형식을 가져야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에 있어서 공간은 시각적 자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최대 걸작인 낙수장은 자연과 하나가 된 유기적 건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는 역사와 지리와 인간을 건축 공간 속에 통합한 위대한 건축가였다. 그는 기술자로서의 건축가, 예술가로서의 건축가이기 이전에 사상가로서의 건축가였으며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위대한 휴머니스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이미 40대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였으나 그의 친구이며 건축주였던 친구 부인과의 스캔들로 인해 상류사회에서 버려지고, 대평원의 집으로 세계에 알려졌던 천 황금시대 이후 작가로서 한계에 부딪친 채 근 20년 가까이 잊혀진 건축가가 되었을 때 그는 그의 스승 루이스 설리번처럼 술에 탐닉하는 대신 잃어버린 창조력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자기반성과 연마에 몰입했다.


건축가로서 황금기일 수 있었던 50대를 철저히 잊혀진 채 지내던 라이트는 60세 이후에 세기적 걸작인 낙수장을 발표하여 화려하게 다시 일어선 후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걸작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캘리포니아의 마린 주정부청사(Marin Country Civic Center)는 드디어 캘리포니아가 자신의 자연에 걸 맞는 크기의 건축 공간을 갖게 된 유기적 건축의 정수이며, 그가 낙수장 이후 16년의 긴 기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최후의 작품으로 남긴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상형문자로 역사에 남았다.



축의 거장들, 즉 발터 그로피우스, 르 꼬르뷔제, 미스 반 데 로에 등보다 10여년 먼저 태어난 그는 91세 10개월 이라는 장수를 누리며, 죽음 직전까지 설계 작업을 계속해왔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광대한 작품을 남겼다. 


다작이었던 그의 업적 모두가 걸작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수많은 걸작을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자연의 생명과 조형 속에서 그 창조 원리를 찾아내어 그의 건축 이념을 확립하였고, 생명력 넘치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를 일컬어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 라이트의 건축적 사고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사고를 간단히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는 근원에의 탐구, 기하학적 형태의 추구, 공간-건축의 실체, 유기적 건축에 관한 것들을 선택하였다.



근원에의 탐구


'원리를 실행한 것은 사라지나,원리는 불멸이다.'

라이트는 건축을 함에 있어 본질과 근원을 찾고자 했고, 그것을 건축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는 건축을 생명의 가장 진실한 기록, 위대한 정신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건축이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정신이고, 또 시대와 장소의 정신이었다.


‘어느 직품이든 나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 내 작품의 배후에 본질이 작용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건축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방법에 완전성을 갖게 될 것이다.’



기하학적 형태의 추구


라이트는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와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기하학적 형태로 그의 작품을 표현했다. 

기하학적 형태는 어린 시절 프레벨 교육시스템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에게 기하학적 체계와 그 디자인 특성에 대한 인식, 3차원적 솔리드와 보이드에 대한 감각, 다양한 요소의 구성 능력에 대한 이해, 복잡한 2차원적 패턴과 3차원적 공간을 ‘엮어내는 것’에 대한 매력, 2차원적인 제도판 위에 그린 패턴들의 3차원적 관계들을 시각화 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것들이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형상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여 형태와 공간 구성으로 발전하였다. 

사각형의 결합과 조합, 삼각형 패턴의 연속된 반복 계획, 육각형이 주조를 이루면서 연속된 벌집형의 플랜 그리고 원형, 원추형 등 평면적인 구상에서 입체적이며, 조형적인 감각으로 발전되었다.



공간-건축의 실체


‘건축의 건실성과 본질은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 있다.’

근대 건축은 건물에 공간의 개념을 주었는데 특히 라이트는 둘러싼 공간을 건축의 실체로 보고 건축 이상으로써 공간 건축을 추구하였다. 


이 공간은 생명이 들어오며, 외부와 내부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관입하여 공간에 흐름과 연속성을 준다. 

그에게 있어 단순한 상자는 마치 관과 같아서 사람을 감금시키고 에워싼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자유롭지 못한 건축이었다. 

모서리를 열므로서 빛과 사람의 움직임이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



유기적 건축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의 화두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유기적 건축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으로부터 왔다. 


또한 그의 스승 셜리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 셜리반은 신건축을 "유기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라이트는 셜리반의 사상을 기능주의적으로 오해한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것으로 이해하였고, 이를 발전시켜 라이트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완성시켜갔다. 


자연에서 추출된 그의 건축적 모티브는 가장 원초적인 개념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에 대한 직관은 자연의 자태에서 형상화된 구조의 시스템을 비롯하여 형태, 내부와 외부 공간의 관입, 수직과 수평의 상호 연관 관계 및 연속과 확장, 반복 및 대립의 관계로 이어져 각각의 개체가 결합되면서 일체로 표현되는 유기적 건축의 맥을 이루고 있다.


라이트는 시대적 흐름의 격동과 역경 속에서도 많은 작품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건축적 사고의 근본인 유기적 건축론을 실제화 하면서 이론과 실체를 겸비하여 충실하게 표현한 건축가 이다. 


자연을 디자인의 모든 원리, 결과의 내부적인 요소로서 이해하였으며 기하학적인 평면의 전개와 입체 조형, 그것에 의한 내부와 외부공간의 융합, 자연과의 일체화 및 재료의 본질이 갖는 자연의 구조를 추상화해서 개발하는 것이 건축의 창조적 행위라고 여겼다. 


그러한 원리를 건축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평생을 일관되게 추구한 거장이었다. 그의 본질을 향한 탐구와 정신은 혼란되고 표피적인 오늘날에 다시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축은 사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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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