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수장 **


1935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피츠버그 백화점 사장을 위해 세운 낙수장은 라이트가 만든 것 들 중 가장 시적인 건축으로서 라이트의 로맨틱한 신념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다. 

낙수장에서 사용된 주요 요소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슬래브로, 천장 역할과 바닥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 다음은 돌인데, 내외부의 석벽과 바닥은 시멘트와 대조적인 조화를 이루고, 마지막으로 유리막이 부여 되었는데, 이것은 연속 된 유리막 가운데 있는 고정 유리창과 결합되어 있다. 

이 유리 커튼 월이 낙수장의 세 번째 주요 요소이다. 낙수장이 지형의 경사에 따라 한 층씩 뒤로 물러나 앉아 있듯이 유리막 또한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져 있고, 거실 주변의 유리막은 내부 공간의 구석마다 있는 기둥이 없이 3면이 연속해서 펼쳐져 있다.


라이트는 조용하고 한적한 생활 방식을 조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주의 환경을 온전히 보존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테라스-정원-땅을 단순하게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융통성 있고 잘 통합된 어떤 것이 요구 되었다. 

그리하여 낙수장의 각 실들은 거의 다 외부와 연속되어 있으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연과 접하고 있다. 


그의 습관처럼 내외부 공간 사이에 어떤 차이나 변화를 주지 않았고, 바닥도 문턱 없이 이어지며, 낮은 천장들은 더 낮아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바깥으로 이어져 평 처마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자연광의 변화와 식물과 공기의 계절적 변화가 어우러져 낙수장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즉, 라이트는 내외부가 하나 되게 하는 공간의 연속성과 내외부 공간에 사용되는 재료의 일관된 연속성(바닥, 벽, 천장)을 강조하였다.




람 사는 기본 공간 형식은 자연과 함께 하는 단독주택이다. 

원시의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다 각자의 집을 가졌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시 주거가 서서히 공동주택으로 바뀌고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수직 동선이 건축에 도입되면서 고밀도 집합주거가 등장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화가 가속되고 도시 주택의 대부분은 공동주택이 되어가고 있다. 라이트의 대표작인 ‘낙수장’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인간 공간의 원형을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의 공간 형식으로 보여주는 20세기 최고의 집이다.

낙수장은 라이트가 69세 되던 해에 완성되었다. 푸른 하늘과 숲과 물 사이에 불세출의 천재가 만든 그 모든 것을 합한 ‘인간의 공간’이 폭포 위에 세워져 있다. 


폭포 위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폭포에 이르는 개천 위의 다리를 지나야 한다. 

다리를 지나 아래쪽 복도를 지나야 현관이 나온다. 현관에서 좌측으로 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펼쳐진 테라스가 있는 거실이 나타난다. 


거실 한구석에 땅에서 솟은 듯한 벽난로와 부엌이 있고 부엌은 철제 창틀을 통해 후원으로 열린다. 

2층에는 세 침실이 있는데 모두 각자의 테라스를 갖고 있고 3층에는 욕실과 테라스가 딸린 큰 방이 하나 있다. 

벽난로와 부엌에 의한 수직 부분이 자유로이 부유하는 테라스를 암반에 고정시켜 자연의 연속 속에 건축형태를 폭포로 상징되는 자연의 힘과 조화되도록 만들었다.




양 건축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현대 건축의 이름으로 라이트는 서양건축사가 이루지 못한 자연과 혼연일체 된 동양적 건축 미학을 서양 현대 건축에 보여주었다. 


자연의 흐름을 건축에 담는 초기의 주택 작품들인 대평원의 집(Prairie House)에서 꽃을 피운 그의 천재가 한동안 일본 문명과 아메리카 문명에 몰두하다가 69세의 나이에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큰 것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낙수장이라 불리는 카우프만 하우스(Kaufmann House)다. 


낙수장에서 자연은 건축과 대립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럽게 건축 공간이 되고 건축 공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상호교감을 연출하고 있다. 

그가 유기적 건축의 최종적 요소로 말하던 건축과 인간의 진정한 상관을 뜻한다. 


그의 건축 속에서 인간은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된다. 

그는 주택 작품만이 아니라 공공건물에서도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수장(Falling water, 1935∼1939년 건설)은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라이트(F. L. Wright, 1867∼1959)가 설계한 대표작으로 개인 별장형태의 주택이다.

피츠버그에 있는 이 낙수장 건물이 최근 들어 캔틸레버 형태(길이:4.57m)의 지붕이 아래로 처지고 있어 라이트의 명성에 오점이 되고 있다. 


뉴욕의 구조전문가 로버트 실먼(Robert Silman)에 의하면, 낙수장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는 건설당시 건설업자가 지적한 철근 량의 부족을 설계자인 라이트가 받아들였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택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콘크리트 캔틸레버는 1997년도에 최초로 구조적인 부실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철제빔을 동원하여 캔틸레버를 받쳐 놓았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거실바닥 한복판에 욕조 배수구만한 크기의 구멍이 났다'고 보도했고, 이 건물의 관리자에 의하면 균열이 계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만약 이 건물이 붕괴된다면, 마치 돌을 포개어 놓은 선반 같을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자연과의 친화'로 유명한 이 주택의 마지막이 아이러니라고 소개하였다.

구조기술자인 실먼은 영구적인 대책으로 '포스트텐셔닝 공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콘크리트 구조체에 구멍을 낸 뒤 고장력 강선을 삽입하여 긴장시켜 쳐진 부분을 원상회복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낙수장 뿐만 아니라 라이트의 주요작품 중 하자가 발생한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중 하나로 플로리다 남부대학(Florida Southern College)의 포크카운티 사이언스 빌딩을 들 수 있다. 


현재, 이 건물은 1996년에 콘크리트 블록에 손상이 발견된 뒤 1,000만불을 들여 영국의 John McAsan사에 의해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15ft(4.57m)길이의 캔틸레버가 쳐진 것에 대한 영구적인 보강법을 검토하기 위해 3명의 건축가, 3명의 엔지니어, 1명의 건축재료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적인 위원회가 열려 최종적으로 '포스트텐셔닝공법' 으로 결정되었다.

1930년대 라이트의 대표작을 원상 복구하는데 7백만 불을 투입하여 2년 내에 착수하기로 했다. 


라이트의 아들인 에릭까지 참가한 지난 4월 10일 피크버그에서 열린 회의에서, 위원들은 1997년에 캔틸레버 하부에 설치된 강제 지주를 제거하고, 영구적인 보수가 될 수 있는 프스트텐션 케이블을 설치하는데 합의를 하였다. 


라이트 설계의 주요점은 캔틸레버로서 지주를 받쳐 놓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실패작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영구적인 보강법의 설계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로버트 실먼사가 맡는다고 한다. 


강케이블은 건물의 주부재인 보의 양측을 따라 설치되고, 처짐이 없는 상태, 즉 당초 거푸집을 제거했을 때의 상태까지 케이블을 설치 할 것이다. 이 보수보강공사의 비용은 공공재원이 아닌 민간차원에서 조성된 복구기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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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