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10건

  1. 2005.06.19 르꼬르뷔제와 근대주의 1
르꼬르뷔제2005. 6. 19. 20:53

르꼬르 뷔제의 공간적 비평 



우리가 건축에 갓 입문하여 듣는 몇몇 이름들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르꼬르뷔제, 미스 반 데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 로버트 벤츄리은 어떤 절대적 상징과도 같다. 


학교의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하여 첫 수업 날에도 듣는 이름들이며, 공부가 계속될수록 그들의 작품사진을 수없이 보고, 도면을 베끼고, 사상을 읽어가며 그 천재성에 점점 매료되어 간다. 

학교 수업도 그들의 작품 중심이고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까지 안주거리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하나의 이즘으로 묶어보자. 

당연히 '근대주의'이다. 

'근대주의' 역시 우리의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들어온 이름이며 하나의 신앙이었다.

근대건축 이전엔 우리가 배울만한 것들이 없는 양, 우리는 근대건축을 배워왔다.



그런데 '근대건축은 실패했다'고 선언한다면 어떻겠는가? 과연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아니, 우리는 이러한 선언을 경청할만한 여유라도 갖고 있는가?

글쎄! 하지만 이러한 선언은 이미 오래 전 세상을 울렸고 80년대 우리 나라에도 소개된 이론이다.

대표적인 책으로는 고 윤일주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근대건축의 실패' 가 있다.


제목부터가 쑈킹한 이 책을 시작으로 몇몇 근대주의 비판서적이 나왔고, 이는 근대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 열을 올리던 우리 나라 건축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되었다.

필자 또한 어느 날 서점에서 느닷없이 이러한 책의 제목들을 보게되었고 호기심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건축에 대해 아직 생소하던 필자에게 소화해내기 이른 책들이어서 반도 읽지 못한 채 팽개치기를 반복하던 중, 도서출판 국제에서 펴낸 간행 3권에 있는 조인철님의 '근대건축은 실패하였는가'를 읽게 되었다.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근대건축의 실패이론을 다루고 있어 필자의 의문을 풀기에 충분하였다.

이글은조인철님의 논문을 바탕으로 전개하겠다.

일련의 근대주의 비판서적들이 주장하는 근대건축의 최대 문제점은 주로 역사성의 한계와 근대주의의 주된 이즘인 '기능'에 관한 것이다.


근대건축 비판 서적들은 근대건축을 역사성 즉 전통과는 단절된 건축으로 간주함으로써 실마리를 풀어간다.

Hitchcock 와 Philip johnson 의 저서 'The International Style' 에서는 건축이 과거의 답습에서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가 건축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건축이 전통과 단절된 듯 보이는 원인과 근대건축의 탄생배경을 살펴 과연 근대건축이 전통이나 역사와는 상관없는 전혀 새로운 건축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산업혁명이후 건축관련 산업은 자유로운 디자인을 가능케 하는 콘크리트와 같은 신소재로 인하여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 원리를 요구했다.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구조방식을 가능케 하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새로운 디자인 원리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건축의 역사나 전통에 연연하지 않고 건축이외의 분야에서 그 원리를 모색하려는 노력을 했는데, Oud가 추상화에서 디자인 원리를 찾아낸 것이라든지 르꼬르뷔제가 큐비즘과 생물학적 구조방식을 건축에 적용시킨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몇몇 예들은 확실히 과거의 어떠한 관습과도 결별한 듯한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인 것이 모더니즘이나 이후의 포스트 모더니즘등의사조는 과거 권위에서의 탈피를 그 사상적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Quatremere de Quincy의 주장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모든 나라에서의 일정한 건축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의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것은 거의 틀림없이 조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장르에서 조차도 전혀 새로운 것은 나올 수가 없다. 

이것은 인간이 고안한 모든 것에 적용된다. 

모든 사물은 기본적인 원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집합적인 핵과 같은 것이다. 

기본적인 원리는 시간의 변화에 순응하며, 사물의 행태 전개와 다양화는 이에 따라 진행된다.



그래서 인류는 몇 개의 장르에서 수천 가지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과 철학의 주된 목적은 그러한 것들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건축에서는 소위 'TYPE' 이라고 하는 것이다.


Quincy의 주장은 다소 막무가내로 느껴지면서도 한편 충분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몇몇 건축가를 제외하고는 소위 기능주의 건축가의

작품 중에도 전통과의 관련성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련성에 대한 논문으로 Collin Rowe의 글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르꼬르뷔제의 Garches 와 Palladio 의 Malcontenta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놀랍게도 두 건축물 사이의 평면 비례, 입면 비례, 옥상의 외관과 역할 등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부분들을 거의 완전한 연결고리로 결합시킨다.

첫째 평면상의 비례에 관한 것이다.

Garches에서는 중심홀이 있고 두 개의 계단실이 있다.

그러나 그중의 하나의 계단실이 Malcontenta의 계단실과 유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90도 각도로 틀어져 있다. 



더욱이 출입홀은 그 바닥의 비대칭적인 개방에 의해서 보여진다....

그래서 Garches에서는 십자형 평면이 단지 흔적으로만 존재한다....

Malcontenta에서는 아주 명백한 십자형 축이 있는 반면에, Garches에서는 마지막 벽체의 중심공간(보이드)에 의해서암시된 교차하는 역동성은 함축적으로, 분절된 것으로써 전개되는 것이 허용된다.


둘째는 외견상 보기에 아주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Garches와 고전적인 Malcontenta의 입면상의 유사성에 관한 언급이다.

두개의 주택에 있어서 마루바닥 위로 Piano nobile이 있다.

그래서 그것은 테라스나 주랑과 계단들의 상승에 의해서 정원과 연결된다.

Garches에서 정면 출입구는 Palladio의 상부 페디먼트와 등가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상층부의 중심적 요소이다.... 그것은 전체로써 입면에서 대칭성을 고무시키지도 않으며... 평면에서 보여진 중심성에 대한 동시적인 긍정과 부정같은 무엇이 보여진다.

세 번째로 르꼬르뷔제가 주창했던 건축 5원칙 중 옥상정원에 대한 것이다.

Malcontenta에서는 주택의 체적을 증폭시키는 피라미드형의 상부구조를 형성한다.


반면에 Garches에서는 주택의 체적으로부터 려내어진... 바닥을 둘러싸는 것으로서 작용하는 평평한 표면에 의하여 구성된다.

그래서 전자의 건물에서 지붕의 모습은 부가적인 것으로서 설명할 수 있으며 후자는 삭제하는 것으로써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과는 별도로, 양쪽의 지붕들은 여러 가지 부수적인, 규칙적인 또는 대략적인 페디먼트나 파빌리온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벽체를 아래의 수직적 표면과 중요한 관계를 맺게하는 것이다.

그림과 같이 보여준다면 이해가 쉽겠지만 필자에겐 아쉽게도 스캐너가 없다.

근대건축과 기능(function)이 서로 밀접한 관계임을 뜻하는 중요한 슬로건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 슬로건을 기능의 도구적 측면으로 해석하기 쉽고 근대주의 건축의 기능에 관한 비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혁명이후 새로운 건축재료의 출현은 건축가들에게 구조적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가능성에 부딪친 건축가들은 오히려 광활한 사막에 떨어진 느낌이었고, 디자인 과정에서의 수많은 선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어떤 이정표를 찾게 되었다. 

이때 기능은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기계적이라는 의미와 합쳐져 하나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조류는 건축을 예술로 보기보다는 과학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건물에 치장되었던 모든 장식을 제거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건축에 있어 효율성, 도구적 기능성, 그리고 경제성과 상반되는 장식은 당연히 배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건축물에 적용되었던 장식적 디자인 원리들을 퇴보시키고 

또한 각 지역 문화마다의 특질과 관계없는 기하학적 단순형태들이 득세함으로써 

디자이너와 사용자간 이해의 괴리를 깊게 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기능은 도구적인 의미로 고착화되었고 이로 인해 근대이후 집중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기능에 대한 비판의 주류를 이루는 주장은 건축가가 일방적으로 부여한 기능에 대한 회의였다. 

즉 건축가가 생각하는 기능과 사용자의 욕구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디자이너 위주의 건축을 비판한 사람으로 Christopher Alexander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좋은 디자인 원리에 따라 훈련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물과 도시를 디자인하자고 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점점 하이테크화 되고 있는 현대의 도시나 건축물을 아마추어들이 디자인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충분히 조직화되지 못한 환경에서의 혼란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근대주의가 주장한 기능을 도구적 의미로만 규정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능에 대한 의미를 확장시키는 몇몇 귀기울일만한 주장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르꼬르뷔제의 슬로건인 '살기위한 기계로서 - 집'은 급진적으로 재평가 할 수 있는 훌륭한 기준이다. 

사실상 기계/집 슬로건은 너무나 급진적인 것이어서 잘못 이해되기도 하고 잘못 인용되기도 했다. 

르꼬르뷔제가 정말로 의도했던 것은 2가지이다. 

첫째는 대량 생산되는 자동차와 같이 값싸고, 표준화되어 있고,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서비스가 용이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계를 닮은 집을 말한다. 



Citrohan이라는 것은 당시 프랑스 유모차 이름을 딴 것이다. 

그가 의미하는 또 한가지는 상속받은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정직한 합리주의에 근거하여 디자인 된 것으로서 욕구에 잘맞게 서비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계를 닮은 집이라는 것이다. 



위의 글은 Reyner Citrohan의 것이다. 

또한 미학적 가치에 대하여 기능을 재해석한 예도 있는데 바로 르꼬르뷔제의 Citrohan에 대한 것이다. 

----------------------------------------------------------------------



Citrohan House Model(1921)은 기술적으로는 그로피우스의 공장만큼 급진적인 것이고, 미학적으로는 Oud의 마을처럼 고상한 건축개념의 완벽한 표현이다. 


거대한 창문, 테라스 그리고 비대칭적인 구성은 Ferro Comcrete의 적용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며, 이로 인해 새로운 건축정신을 완전하게 불어넣고 그때까지의 어떠한 건축물이 한 것보다 과거의 관습에서 탈피하는 디자인을 제시히게 되었다. 


앞의 내용들은 기능주의에 대한 경직된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기능을 기계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유모차처럼 아주 편안한 것으로써 모든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쾌적공간으로, 

이상적인 기능을 전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근대건축을 이해하는 데 있어 Banham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기능에 대한 무조건적 부정론자와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근대건축을 일단 부정한 상태에서 논리를 전개함으로서 지금의 건축과 미래건축의 출발점이 근대건축과는 완전히 분리되도록 강요하는 반면, 후자는 기능과 장식을 같은 선상에서 포용할 수 있는 입장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근대주의가 주장했던 기능에 대한 역효과가 없지 않았으나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능은 현대에서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르꼬르뷔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르뷔제의 근대건축 5원칙  (2) 2005.06.19
김효상 Le Corbusier  (2) 2005.06.19
김보경 현대 건축-르 코르뷔지에  (3) 2005.06.19
롱샹성당  (3) 2005.06.19
Posted by 나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