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골과 콘크리트
‘철골건물과 콘크리트 건물을 동시에 지으면 어느 것을 빨리 지을 수 있나?’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철근콘크리트 건물보다 철골건물(또는 철골철근콘크리트 건물)을 훨씬 빨리 지을 수 있다’라고 대답한다. 학생이건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이건 간에 심지어는 경험이 아주 많은 시공기술자들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경우에 따라서 콘크리트건물이 빠를 수도 있다’이다.
또 한 가지 질문은 ‘철골건물과 콘크리트건물 중 어느 것이 지진에 강한가?’라는 것으로서 이 물음에도 역시 대답은 대부분 철골건물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기술자들도 가지고 있는데 최근의 고급아파트 분양광고에 ‘콘크리트건물에 비하여 내진성능이 우수한 철골철근콘크리트건물 등’을 운운하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일반상식화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건축에 문외한인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건설기술자들까지도 ‘철골건물은 고급건물이고, 내진성능이 우수하다’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하여 차근차근 짚어보기로 하자.
먼저 철골건물이 콘크리트건물에 비하여 시공속도가 빠른가 하는 문제로서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건축물에 작용하는 하중과 저항방식에 대하여 간단히 짚어보자. 일반적인 고층사무실 건축물의 예를 들어 힘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축하중(Gravity Force)의 경우는 바닥슬래브에서 보(Beam & Girder)를 따라 기둥으로 전달되어 기초에 도달하고 횡하중(Lateral Force)의 경우 우선 풍하중은 외벽에서 바닥슬래브를 따라 코어(Core)와 기둥과 보의 라멘구조부분에 전달되어 코어와 라멘구조가 지지해주고 지진파가 건축물에 작용할 때는 횡하중에 대하여 라멘구조와 코어부분이 분담하여 저항한다.
이러한 구조방식이 보편적인 고층건축물의 구조방식으로서 초고층 건물일 경우 튜브구조(Tubular System)를 채택하기도 하고 초고층이 아니라면 철골라멘조(코어가 없이 기둥, 보, 슬래브의 철골라멘구조가 횡하중에 저항하는 방식)로 시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구조는 코어벽체구조이다. 즉 초고층 건축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층건축물은 철근콘크리트구조로 하건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로 설계하건 횡력에 저항하는 방식이 전반적으로 코어와 라멘이 횡력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의 공사기간을 생각해 보자. 코어벽체구조의 건축물은 구조재료가 철골이던지 콘크리트이던지 간에 골조공사의 공기는 바닥이나 보의 시공기간이 아닌 코어의 시공기간이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코어 부분은 골조공사에서 가장 까다로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샤프트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많기 때문에 기둥이나 보의 골조보다 공사물량이 적다하더라도 일은 훨씬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러한 이유로 코어구조방식으로 설계된 철골건물과 콘크리트건물의 골조공사기간을 비교해 보면 실제로 철골건물의 공사기간이 더 길어진다. 콘크리트건물의 경우에는 거푸집을 설치하여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골조공사가 완료되지만 철골건물에는 철골공정이 있으므로 철골조립이 아무리 빨리 진행되더라도 코어가 완료되지 않으면 후속공정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철골건물은 건물의 뼈대(철골)가 하루게 다르게 위로 올라가므로 철골건물의 골조공사도 훨씬 빠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한참 아래에서 기둥거푸집과 코어거푸집이 따라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어떤 분들은 코어는 천천히 시공하고 슬래브만 먼저 콘크리트타설해서 올라가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철골로 짓는 건물은 외벽과 코어의 작업량이 가장 많다.
엘리베이터, 화장실, 공조실 등 가장 복잡한 공정이 코어 부분에 몰려 있으므로 코어가 시공되지 않으면 결코 건물을 빨리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콘크리트조로 건물을 지으면서도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예는 미국과 유럽 등에 그 기록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의 시공기록과 비교해 볼 때 상상을 초월하는 사례를 든다면 ‘60층 정도의 고층아파트 건물을 12개월에, 60층 오피스건물을 24개월에 토공사에서 입주까지’하는 등 그 사례도 매우 많고 한동안 세계 최고층건물이었던 10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1930년대에 14개월 미만의 공기로 지어진 정도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철골조의 건물이 콘크리트건물에 비하여 공기가 단축된다는 것은 철골조립의 진행상황만을 보는 시각에 기인하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철골건물이 콘크리트건물보다 빨리 시공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설계되는 구조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코어방식의 철골건물이 콘크리트건물에 비하여 결코 빠를 수 없다고 했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코어벽체 없이도 횡력에 저항할 수 있는 구조로 시공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코어벽체가 없는 건물은 다른 부분이 코어의 기능, 즉 횡력에 저항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 대안으로서 철골기둥과 거더가 강접합(Moment Connection)으로 연결되어 이것만으로 횡력에 버티는 방식이면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철골부재의 조립이 진행되는 속도에 따라 바닥슬래브의 콘크리트만 타설하면 되므로 철골 조립속도를 매 층당 3일에서 4일정도(철골 1절당 10일 내외)로 가정한다면 이론상으로는 이 속도로 골조공사를 진행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초고층건물에서는 불안정한 구조물이 될 것이고 기둥과 거더 등의 부재단면이 매우 커지므로 비경제적인 구조설계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철골구조 내에 철골로서 콘크리트코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구조체를 설치하여 이 구조체가 횡력에 저항하는 방법도 가능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의 물음 중 다른 하나로서 과연 철골건물이 콘크리트에 비하여 지진에 더 안전한 건물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건축물이 지진에 대하여 저항하는 방법은 내진이라는 방법과 면진이라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지진에 대하여 건축물이 강하게 버티는 방법이고 후자는 지진이 건축물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방법이다. 두 가지 방법 중에 어는 것이 효과적인가 또는 우수한가 하는 것은 아직 검증된 것은 없지만 내진구조는 오래 전부터 적용해 왔던 방법이고 면진구조는 비교적 최근에 일본을 중심으로 개발.적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내진구조는 철골건물이건 콘크리트이건 모든 건축물에 채택될 수 있고, 면진구조는 방식의 특성상 철골건물에 적용할 때 유리한 구조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반적으로 콘크리트건물이나 철골건물에 내진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며, 십 수년 전부터 고층건축물의 내진구조설계가 의무화 되어 있어서 콘크리트건물도 지진에 안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진이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은 건물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커지므로 콘크리트건물이 철골건물에 비하여 골조구조체의 중량이 무겁기 때문에 철골건물보다는 지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 전체의 중량으로 볼 때 반드시 콘크리트건물이 무겁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건물내 칸막이벽 재료의 종류, 바닥마감공법 등과 같은 마감공사의 공법과 재질에 따라 건물의 자중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진이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골조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도 좋지만 경량재료의 사용, 마감공법의 건식화, 마감공사의 단순화 등의 방법을 취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콘크리트건물의 골조자중을 더욱 줄인다면 콘크리트건물도 철골건물에 비하여 가벼워질 수도 있다. 그 방법으로는 먼저 콘크리트의 강도를 증대시켜 기둥과 벽체의 단면크기를 줄일 수 있고, 기둥은 콘크리트로 시공하되 거더나 보는 철골과 콘크리트를 합성한 복합구조를 채택한다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 즉 철골건물이 콘크리트건물에 비해 지진에 안전하다라는 문제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그 사례로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동부지역에서는 초고층건물이 철근콘크리트조로 시공되는 사례가 매우 흔하다. 그리고 현재까지 지어진 건물들의 지진피해를 볼 때 사실 철골구조라 해서 그리고 철근콘크리트건물이라 해서 지진발생시 피해의 적고 많음에 관한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철골건물이 너무 쉽게 지어지는가!
사실 20층 정도되는 건물을 철골조로 시공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철골재료비가 싸고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생산성과 원가경쟁력을 보유한 P제철이라는 회사가 있기에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수년 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현장에서 근무할 당시 그곳에는 초고층건축붐이 한창이었는데 당시에 필자가 근무했던 현장의 60층 오피스건축물도 콘크리트건물이었고, 현재 세계 최고높이의 건축물인 KLCC빌딩도 당연히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일부 보의 스팬을 크게 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철골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주변에서 지어진 많은 초고층 건물에 철골이 사용된 곳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물론 지진이 없는 곳이라서 내진설계에 관한 기준이 우리나라보다는 느슨하지만 이러한 초고층건축물에는 풍하중이 지진보다 더 크게 작용하므로 건축물을 약하게 설계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말레이시아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 태국, 홍콩 등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유럽은 어떠한가. 최근 선진국에서 초고층 건축물의 신축현장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초고층건축물의 신축이 한창일 때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철골조를 도입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콘크리트조의 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철골값이 콘크리트보다는 비싸기 때문이며, 철골은 화재에 약하고 바람에 의한 건물의 진동이 매우 커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진동을 느낄 정도의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콘크리트건물에 비하여 비싸고 구조적으로도 특별히 탁월하다 할 수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철골건물이 흔하게 지어지는 이유는 건축주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철골로 지어야 비싼 건물이고 콘크리트건물은 싸구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다른 나라에 비하여 콘크리트에 대한 기술개발이 부진하고, 고강도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데 매우 부정적이다. 다른 나라는 500kg/cm2정도의 콘크리트를 아무런 부담없이 사용하는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300kg/cm2만 넘어가도 심의를 통과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건축시공기술자들만이라도 콘크리트건물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최소항 ‘철골건물=고급건물, 튼튼한 건물’이라는 생각은 버리도록 하자.
출처 : 건축, 사람과 현장/이경섭/기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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